여행 이야기

효자회 나들이(경주 양동마을, 경북상주경천대 및 견훤성)

자연인2 2014. 12. 4. 11:48

1. 일시 : 2014.11.30

2. 곳 : 경주 양동마을 및 경북 상주 경천대 및 견훤성

3. 함께한 사람 : 김해김씨 목경파 76대손 효자회 회원 및 가족 26명

4. 일정 : 창원 종합운동장 옆 만남의 광장 출발(08:10) - 양동마을 도착(10:30) - 양동마을 출발(11:45) - 경북 선산 백두산 식당 점심(소고기 전골, 13:30 - 14:20)

             - 상주경천대 (14:50-16:00) - 견훤성입구 금녕군 김목경(김해김씨 경파 중시조, 고려 후기 충혜왕 때의 문신, 정일품 벼슬함)신도비 참배(17:00) -

            북면 달천계곡 저녁식사 오리탕(20:00-21:30)- 창원종합운동장 만남의 광장(22:00)

5. 간식 및 먹거리 - 족발수육(10만원), 문어숙회(55,000), 소주 26병, 맥주 12명(?), 음료수, 과자, 김치, 핫바, 아이스크림, 감자

6. 수입 : 기본경비- 김재모, 김재호, 김규환, 김필환, 김재진 각 7만원, 찬조 - 김광룡(50만원), 김재원(50만원), 김재욱(30만원), 김재두(30만원), 김종권(20만원)

             노래수입 - 10,000 ,    수입계 : 2,160,000 

7. 지출 : 버스 대여(700,000), 봉사료(100,000) 점심(285,000), 저녁(300,000), 족발등 준비물(300,350), 간식 30,000원, 조카들 노래격려비 50,000원, 우산 3개 24,000

            양동마을 입장료 92,000원 등 합계  1,851,350 원

8. 잔액 : 308,650 원

 

매표소앞에서 기념촬영

1984년 12월 20일 마을 전체가 국가지정문화재(중요민속자료 제189호)로 지정된

양동마을 모습 일부

경주시 북쪽 설창산에 둘러싸여 있는 양동마을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는 회원들

마치 한옥같은 양동초등학교

 

청백리로서 조선 중종(1469-1494)~중종(1506-1544)때

명신 손중돈(1463-1529) 선생이 손소공으로부터 분가하여 살던 집인 관가정

관가정앞에서 셀카봉으로 한 컷..

관가정에서 바라본 양동초등학교 방향

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화려한 지붕구조를 가진 아름다운 건물로 

이언적 선생이 1543년경에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할 때

성종임금이 그의 모친의 병환을 돌 볼수 있도록 배려해서 지어 준 집인 향단

마을의 진산인 성주봉과 하촌마을

와가와 초가 등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지며 전통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양동마을

경주손씨와 여강이씨 종가가 500여년 동안 전통을 잇는 유서 깊은 반촌 마을, 양동마을

초가지붕 왼쪽으로 무첨당(이언적 선생의 부친이 살던 집)이 보인다.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때묻지 않은 향토성 등에서 어느 곳보다 훌륭하고 볼거리가 많아

1992년 영국의 찰스 황태자도 이 곳을 방문했다고 함

경천대 전망대 가는길 - 황토볼 체험장

전망대에 있는 돌탑들

 

경천 전망대..

주흘산,소백산,청화산까지 보이는 제1의 전망대이며,

전망대 마당에 상수도를 먹을 수 있는 곳이 있어 목을 축일 수 있다.

백자모형의 음수대가 이색적이다.

 

물안개로 인해 흐릿해보이는 낙동강 - 전망대에서 바라 본 풍광

낙동강 1300리 물길중 하늘이 스스로 만든곳이라는 경천대가 발아래 보이고....

인간의 희로애락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이색 조각공원

경천대 표지석

임진왜란때의 명장 정기룡 장군이 젊었을 때 이곳에서
용마와 더불어 수련을 쌓았다는 이곳!

 경천대입구 인공폭포앞에 있는 정기룡 장군 동상

낙동강 물길 중 제일 아름답다는 경천대에서

 

낙동강의 신비를 간직한 천혜의 절경으로 당초에는 하늘이 만들었다 하여

"자천대(自天臺)"라 불렀으나, 인조 15년(1637) 우담 채득기 선생이 이곳에

은거생활을 하면서부터 하늘을 떠받든다는 뜻으로 "경천대(擎天臺)"로 부르고 있다.

 

경천대 비석

"대명천지 숭정일월(大明天地 崇禎日月)"이라는 한자가 새겨져 있다.

이것은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를 도운 명나라와의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뜻으로,

당시에 국가에서 명나라의 숭정연호(崇禎年號)의 사용을 금지하자

충절의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우담 채득기 선생이 바위에 새겨 놓은 것이다.

 

병자호란 때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청나라 심양으로 볼모로 잡혀갈 때 수행했던

우담 채득기 선생이 관직을 마다하고 은거하며 학문을 닦던 곳인 무우정

채득기 선생의 생가터 앞에 있는  용마 동상

 

견훤산성 입구에 있는

고려삼중대광(오늘날 국무총리) 금녕군 김해김공 신도비

 

어설픈 해설가 - 김광룡

김목경 조상님의 신도비 앞에서..

신도비 - 왕이나 고관의 무덤 앞 또는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세워 죽은 이의 사적을 기리는 비석

신도 - 신령의 길

 

북면 달천계곡에서의 저녁식사 - 재무보고를 하고 있는 김규환 총무님

 

회원들의 단합을 위하여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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